Wecode 한 달을 복기합니다
0. 복기
복기(服忌)[명사] : 바둑 대국이 끝난 뒤 해당 대국의 내용을 검토하기 위하여 두었던 순서대로 다시 두어보는 일.
개발자 블로그에서 복기라니? 매우 낯설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내가 바둑을 배우며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복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복기는 처음부터 다시 한 수씩 두면서 왜 그렇게 뒀었는지 되돌려보기도 하고, 승부처의 순간만 다시 되돌려서 그 때를 다시 두면서 어떤 수가 좋았고 어떤 수가 안좋았는지 되돌아 보는 시간이다. 작게는 바둑 한 판을 복기해볼 수도 있지만, 크게는 내 인생 전체를 복기해볼 수도 있다. 오늘 나의 한 달을 복기해보고자 한다. 말은 뭔가 멋있게 하지만 사실 나도 그렇게 자주 복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둑을 두다 보면, 끝내자마자 바로 복기를 해보고싶은 판들이 꼭 있다. 위코드에서의 한 달이 그랬다. 꼭 복기해보고싶었다.
1. 설렘 반 두려움 반
우선 위코드의 첫 날로 돌아가고자 한다. 모든 것을 되돌아볼 때는 첫 날을 떠올리기 마련이니까… 10월 19일(월). 나는 잠을 못잤다. 부트캠프를 간다는 설렘? 새로운 삶을 향해 나간다는 기대감? 그리고 동시에 잘 못하면 어떨까하는 불안감 등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있던 밤으로 기억한다. 아침일찍 가려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지만 온갖 생각이 가득했던 밤이었다. 억지로 잠에 들었으나 매우 일찍 일어났다. 알람소리도 없었다. 마치 이등병시절처럼 눈이 번쩍 떠졌다. 아마 긴장해서 그랬을 것이다. 몸은 피곤했지만, 아침 일찍 테헤란로로 향하는 발걸음은 꽤나 설렜다. 약 6개월만에 다시 지하철에 사람들과 엉켜서 함께 가는 기분은 나쁘지않았다. 아니 꽤나 기분 좋았다 (백수생활도 즐거웠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것도 나에겐 기분 좋은 일이다. ) 그래도 또렷한 정신으로 가기 위해 아침부터 스타벅스에서 난생 처음 아메리카노 벤티사이즈를 시켰다. 진짜 양이 많긴 많더라…어쨌든 잠은 깼다. 이정도 커피 마시면 누군들 잠이 안깰까싶지만…
그렇게 도착한 위코드에서는 나에게 작은 종이봉투를 건내며 다가올 날들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환영해주고 있었다. 이 때까지 너무 설렜다. 사전스터디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웃고 떠들었다. 그러나 여느 드라마의 클리셰처럼 나는 다가올 날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못했다.
첫 날은 하루종일 오리엔테이션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근데 아주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떤 멘토님의 말씀 “오늘 일찍 가시는 분은 없으시죠? 다들 열심히 하실꺼죠?” 정확한 워딩은 기억안나지만 이런 늬앙스의 말이었다. 정말 첫 날부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동기들 대부분은 첫 날부터 주어진 과제들을 해결하고 공부하기 위해 저녁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했다. 위의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인데 이 때가 아마 저녁 9시쯤 내가 집을 가면서 찍었던 사진인 것같다. 이 날 마지막까지 한 사람은 새벽 2시쯤 갔다고 알고있다. (오늘 첫날인데…?솔직히 조금 심한거 아냐?)
2. 열심
이 곳의 한 달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열심’이란 말밖에 안떠오른다. 정말 ‘열심’으로 가득찬 곳이다. 위코드 전체가 그랬지는 모르겠다. 그냥 일단 내가 속한 14기는 그랬다. 14기 전원이 첫 날부터 지금까지 정말 다들 열심히 했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솔직하게 ‘내가 여기서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될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각오도 했었고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으니…성실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이틀도 못갔다. 진짜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할 정도로 모두가 열심히 했다. 아래 사진은 내 생각이 깨졌던 그 날 저녁이다. 우리 동기들은 ‘친해지길바래(?)’ 같은 느낌으로 치킨을 먹으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친해졌다.
이 날 이렇게 저녁을 먹고 (위워크에서 제공해주는 맥주도 마셨다) 다들 치킨에 맥주까지 마셨으면 일찍 집에 갈 법도 한데, 또 많은 사람들이 남아서 공부를 했다. 진짜 대단한 사람들…
그러고 오늘까지 딱 4주가 지났다. 4주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나도 열심히 했지만 동기들도 정말 열심히 했다. 옆방의 13기 선배들이 “14기는 프로젝트 기간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해요? “라고 물을 정도였으니…그 대답을 지금 생각해본다면 준식님이 첫날 이야기했던 ‘기수의 분위기’가 대답인 것같다. 우리 기수는 정말 분위기 해치는 사람 없이 다들 열심으로 가득찬 사람들이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사람들 중에 또라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내가 또라이라던데…그럼 내가…그 사람인가…? 흠…이건 다시 한 번 더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다…) 모두가 열심히 했기에 나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4주차쯤 내가 너무 피곤해서 몸이 안좋아보인다고 한 친구는 나에게 박카스를 건냈고,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면서 와서 나의 어깨와 목을 마사지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 동기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나 역시도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14기 동기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3. 위기
잘 버텨왔지만 위코드에서의 한 달이라는 시간 중 딱 이틀동안 정말 마음이 너무 힘들고 공부가 안됐던 날이 있다. 11월 5일(목) 오후 3시 9분 나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어느 헤드헌팅회사였다. 문자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대한민국 1위 IT기업에서 신사업을 준비중이고, 조건이 매우 괜찮으니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내용이었다.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진짜였다. 이 회사에서는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중인데, 기존에 비슷한 경력이 있던 나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조건도 진짜 좋았다. 또 내가 진짜 가고싶었던 회사였다. 근데 문제는 포지션이었다. 기존의 마케터로 제안을 했다. (하긴 당연하지…설마 벌써 개발자로 연락이 오겠어)
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해당 포지션은 공개로 뽑지도않고 비공개로 일부 사람들만 타겟팅해서 연락을 보내는 것같았다. 회사 네임벨류, 연봉, 조건 등 모든 것이 좋아서 마음이 흔들렸다. 이 문자를 받았을 쯤 나는 개발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졸업이후에 만약 잘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조금 힘들어하고 있었다. 몇몇 개념이 너무 이해가 안되어서 내가 개발자를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있었고 나날이 자신감이 떨어지던 중 이런 문자를 받으니 갑자기 마음이 더 흔들렸다. 그래서 전직장 동료 등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의견을 물었다.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택의 나의 몫이니 혼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왜 내가 마케터를 그만뒀었는지. 왜 개발자로 선택하고 공부하고 있는지 등. 둘 다 동시에 진행하면 안되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 성격상 둘 다 동시에는 못할 것같았다. 한 쪽을 선택하면 분명 마음이 많이 기울어서 다른 한 쪽은 집중을 못할거라고 판단했기때문이다. 하루가 지나고 그 날 밤 나는 개발자의 길을 계속 가기로 결정했다.
결정하고나니 마음은 후련했다. 그래도 내가 흔들렸다는 사실에 대해 약간 스스로에 대한 화가 있었다. ‘이렇게 쉽게 포기하려고 개발을 선택한건가?’ 그래서 그 날 밤에 인스타그램으로 공개적으로 그냥 선언해버렸다.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기 위함이자, 동시에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때문이라도 포기하지않기 위해.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이 선언(?)에 대해 좋아요와 댓글로 응원해줬다. 다행히 30년간 그리 나쁘게 살지않았나보다. 따로 DM이나 카톡, 라인 등으로 연락와서 응원해주고 밥 사주고 커피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꼭 보답할게요 ! )
4. 결말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Time flies” 정말 시간이 날라갔다. 이 표현 이상의 표현을 못찾을 것같다. 아침에 눈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공부하고 코딩하고 집에 가서 다시 잠만 잤다. 세탁기를 돌릴 시간조차 부족했다. 우리집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집같았다. 그렇게 많이 마시던 물도 줄어들지않고 빨래감 외에는 아무 것도 변하지않았다. 나만 그냥 집에 잠시 잠만 자러 왔다가 다시 나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동기들끼리 밥먹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진짜 내가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무조건 갔을거라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렇게 공부했어도 서울대는 못갔을 것같지만 어쨌든 열심히 하긴 했다. 재미라면 재밌었고 힘들었다면 힘들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시간이 또 기대가 된다. 2주간 프로젝트 그리고 또 2주간 프로젝트. 얼마나 바쁠까. 그래도 그 시간 안에 분명 나는 모두 다 성장할거라고 확신된다.
5. 에필로그
위의 이야기 외에도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참 많은데 이건 그냥 list형식으로 정리하고 끝내려한다. 글감을 적당히 아껴둬야 다음에 또 쓸 수도 있으니, 아래 소재를 적어두고 또 언젠가 적을게요 ! 또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 엄마가 보내준 과자들
- 위코드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첫 달째 세션, 커리큘럼, 진행과정)
- 코딩 공부보다 힘들었던건 사실 다른 것
- 고마운 사람들
-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 코로나때문에 힘들었던 점
- 클론프로젝트 주제 선정할 때 했던 고민들
- 결국은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 혹시 내가 너무 설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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